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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억

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by lime9 2024. 4. 3.

책 제목이 눈길을 확 끌었다. 나도 그동안 궁금하던 주제를 다룬 책이라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책 표지도 자세히 보면 무언가 이상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왜 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며 확신을 고수하는 가에 대해 고찰하는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여러 번 언급된다).

 

김영사의 <제정신이라는 착각>

 

 


 

따라서 우리는 확신에 의거해 속하고 싶은 집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속하고 싶은 집단에 의거해 확신을 선택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의 확신은 한편으로는 속한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타자를 배제하는 데 기여한다.

 

집단과의 동질감, 소속감을 위해 진화론적으로 우리는 집단의 생각을 따르게 된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은 오로지 나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외부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는 복잡성을 줄여줌으로써 많은 것이 더 단순해 보이게끔 할 수 있으나, 사회 공동체가 건설적 대화를 통해 서로 타협하고 공동의 의사결정을 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든다.

 

뇌는 매우 많은 것을 처리하느라 바쁘다! 이러한 처리를 간소화하고 뇌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예측하게 된다. 이는 복잡성을 줄여주지만, 이데아로 나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있지도 않은 자극을 지각하거나 존재하는 자극을 잘못 지각하는 경우는 환각이나 환상이라고 한다. 반면 망상은 감각적 지각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착상, 아이디어, 생각이다.

 

환상과 망상은 헷갈리기 쉬운 개념이다. 책에서는 이에 대한 차이를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즉, 망상은 우리가 지각하는 것(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이 아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종교적 믿음은 바로 이런 반증 불가능성을 무기로 한다.

 

종교는 필연적으로 인식적으로 비합리적 확신이다. 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종교는 종교 나름대로 그 비합리적 확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종교적 믿음이 인식적으로 비합리적 확신이며, 이는 종종 볼 수 있는 '정상적인' 형태의 비합리적 확신이라는 점만 확인하기로 하자. 종교적 믿음은 '어쩌다 보니' 비합리적이 된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인식적 합리성의 원칙을 그 자체로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신자들은 종종 종교적 믿음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식적 합리성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신新무신론자가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에서도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는 맹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화장실 변기의 물이 어떻게 내려가는지 아느냐 물어보면,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논리적 작동 방식과 원리를 설명해달라고 하면 난처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안다고 확신하는 것에서 조차도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상한 확신을 갖고 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도, 별 의도 없이 일어난 일도 누군가의 의도로 해석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런 인지 편향을 과민한 행위 탐지 시스템 (Hyperactive Agent Detection Device, HADD)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알지 못하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한다. 따라서 아무 의도가 없더라도 나름대로 패턴을 찾고,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일식이 일어나면 이는 불길한 일의 징조라는 해석이 예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확신에 위배되는 정보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기존 확신을 고수하는 현상을 개념적 보수주의라고도 한다.

 

음모론자들은 주장한 음모론에 위배되는 근거가 계속해서 나타나더라도 그것 또한 계략이라고 취급하며 기존 확신을 강하게 고수한다.

 

 

우리가 인지 편향을 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현상도 그 자체로 인지 편향으로서 맹점 편향 (blind spot bias)이라 불린다.

 

자신의 인지 왜곡을 보지 못하는 맹점 편향은 우리가 합리적이라는 환상을 갖게끔 한다.

 

 

망상적 사고와 '정상적' 사고가 우리 생각만큼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상적' 사고는 우리 생각만큼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맹점 편향으로 우리는 우리에 대해 사실보다 낫다고 평가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우리 생각보다는 '더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조현병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것이 바로 조현병의 진화적 모순이다.

 

조현병이 우리의 목숨에 위협되는 것이라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는 자연 도태되어 사라졌어야 하는 특성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도 조현병을 그 모습을 보이고, 작용하는 것일까?

 

 

"유전자 변이가 특정 환경에서 유기체의 적합성을 감소시키는 경우 (...) 이를 유전적 질환이라 부른다. 이런 변이가 다른 환경에서 적합성을 높인다면, 이를 '유전적 향상'이라 부른다. 그러나 진화생물학과 유전학을 종합하면 이런 판단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향상이나 질병은 특정 환경에서 특정 유전자형의 적합성을 말해주는데, 환경이 변화하면 이런 단어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많은 유전자 질환 또는 특성은 과거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수 있다. 현재 환경과는 맞지 않는 유전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불편을 느끼지만, 그 전에는 그러한 특성을 존속할 수 있는 특징이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현병도 과거에는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유전적 특성이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정신병이 있다고 여겨지는가, 하는 질문은 의심할 여지없이 한 사회가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가 하는 것과 연결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으로서 사회가 정의하고 요구하는 '정상'이 결국 그 사회의 일원들에게 기대하는 면이 될 것이다.

 

 

경계는 유동적이고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를 명확히 구분하는 건 어렵다는 것이다.

 

 

지각과 생각, 행동에서의 비합리성이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실수失手의 비용을 계산하다 보니 나타난다는 생각을 오류 관리 이론 (Error Management Theory, EMT)이라 부른다. (...) 비합리적 확신은 실수율을 더 높일지 모르겠지만, 비용이 낮은 실수는 용인하고, 높은 비용이 드는 실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수율을 높이더라도 적응적인 행동인 것이다.

 

실수율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과 굉장히 유사하다.

 

 

WYSIATI는 '네게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다 (What You See Is All There Is)'의 약자로, 결정을 할 때 힘들게 다른 정보를 찾기보다 지금 주어진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을 말한다. (...) 일단 그럴듯한 스토리가 마련되어 있으면 공연히 복잡한 정보로 그것을 망가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결정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지 직감적으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뉴는 종종 자동적으로 실행되고 보통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빠르고 간소한 휴리스틱을 직감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런 결정을 뒷받침하는 좋은 논지를 찾게 만든다는 결론이다. 우리가 해당 결정을 정말로 스스로 내렸는지, 아닌지와도 무관하게 말이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이런 결정이 옳다는 논지로 스스로를 설득하기에 충분하다.

 

 

인식적 비합리성은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며, 결코 병리학적, 즉 망상적 확신이나 취약한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진화적 안경을 쓰고 관찰하면 인식적 비합리성은 '버그'가 아니라 '특징'이며, 오류가 아니라 기능이다. (...) 진화론적 설명은 비합리성을 좋은 것으로 여겨야 하는지, 나쁜 것으로 여겨야 하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의 비합리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인식적 비합리성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하나의 특징이다.

 

 

첫째, 학습된 지식으로 뇌가 '내적 세계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는 이런 모델을 도구로 가설을 만들어, 들어오는 감각 데이터를 예측한다. 둘째, 뇌는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 소위 예측 오류를 활용해 '내적 세계 모델'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업데이트, 즉 학습한다.

 

인공 지능 모델이랑 똑같이 동작하는 것 같네... 이 책에서 소개한 이론을 토대로 새로운 인공 지능 모델을 구축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예측 처리 이론은 예측과 감각 데이터를 비교할 때 특정 감각 데이터가 특정 자극에 의해 발생할 확률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자극이 개인에게 갖는 '중요성'에 더 가중치를 두는 듯하다.

 

개인적 중요성은 예측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쳐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데에 기여한다.

 

 

조현병이 있는 사람은 예측의 정확성이 줄어들거나(그래서 예측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거나), 감각 데이터의 정확성이 너무 높거나(그래서 예측의 오류에 더 많은 비중을 두거나) 한 상태다. 또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태다.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보다 조현병이 있는 사람은 어느 한 가지에 비중을 더 두거나 두지 않는 상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예측과 감각 데이터 사이의 균형이 한쪽으로 밀려난 상태이다. 이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의 순서를 확인해보자:

도파민 과잉 → 비정상적 현저성 → 지각과 확신의 불일치 → 망상적 설명 → 지각과 확신의 불일치 해소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게 다가오는 현실 세계보다 통제감을 가지고 '돌아버린' 세상에 사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설명할 수 없는 현실 세계에 있기보다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비정상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비이성적이라고 판단하는 사고 방식을 확신에 차 고수하게 된다.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적 현저성이 있을 때 망상적 설명이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 그리고 화재경보기와 전단 볼트 원칙을 비유로, 망상 경향이 제공하는 적응적 이익도 도출해봤다. 이렇듯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점은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기타 인식적 비합리적 확신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망상적 설명이 지각과 확신의 불일치를 해소시켜주므로 스트레스를 경감시켜주어 개인에게 긍정적 효과를 준다.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모든 확신은 경험을 이해하고, 지각을 더 커다란 그림으로 정돈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찾도록 도와준다.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종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적응적인 행동이다. 이런 인식적 비합리성 경향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는 우리 머릿속 예측 기계가 예측을 얼마나 신뢰하고, 새로운 감각 데이터에 얼마나 비중을 두는지에 좌우된다.

 

 

'존재'를 '당위'로 연결시켜 그릇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우리는 기술적 진술에서 직접 규범적 진술을 이끌어낼 때 이런 오류를 범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이러이러하다는 존재로부터 어떤 것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당위를 이끌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연과학적으로 뭔가가 자연적이기에 좋은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자연주의적 오류 (the naturalistic fallacy)'라고 칭한다.

 

연구를 할 때에도 이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식적 비합리성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바람직한 것이라고 선언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자신의 비합리성과 다른 이들의 비합리성을 알고,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어떤 기능을 갖는지 이해하면, 그리고 비합리적 사고와 연결된 함정과 위험을 알면, 우리는 '지식 있는 생물종'으로서 이에 건설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확신이 늘 가설일 따름이며, 우리가 확신을 고집하는 것에는 진화적으로 우리 안에 깊숙이 심겨진 이유가 있다는 걸 늘 의식해야 한다. 이런 이유가 우리가 확신을 고집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구실이 되면 안 된다. 이런 이유는 다만 우리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며, 아울러 다른 사람들이(아마도 우리와 비슷한 이유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우리가 보기에는 '정신 나간') 확신을 고집하는 경향도 설명해준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흔히 '정신 나간' 사람들의 사고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배움을 통해 타자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지식 있는' 행동으로 건설적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